경북 안동 진성이씨 가문에서 출생
본명 이원록, 자 태경
조부 이중직에게 소학 배우기 시작.
조부 별세, 가세 기울기 시작.
보문의숙 수학.
도산공립보통학교 졸업.
결혼. 가족 대구 이사.
서병오에게 그림 배움.
처가에서 가까운 백학학원(1921 설립)에서 수학(보습과 과정 - 1922년까지), 둘째 이름 원삼을 사용.
백학학원에서 교편 잡음.(9개월 동안)
4월 학기에 맞추어 일본 유학. 경찰기록 - 도교쇼오소쿠(東京正則)예비학교, 니뽄(日本)대학전문부, 검찰신문조서 - 킨죠우(錦城)고등예비학교 1년간 재학.
1월에 귀국, 대구 조양회관을 중심으로 활동, 이정기ㆍ조재만 등과 어울리며 베이징 다녀감.
7월 베이징 쭝구어(中國)대학 상과에 입학하여 7개월 재학(혹은 2년 중퇴).
여름에 귀국, ‘장진홍의거(10월 18일)’에 얽혀 구속됨.
첫 시 「말」을 조선일보에 발표
아들 동윤(東胤) 태어남(만 2세에 사망). 광주학생항일투쟁이 파급되자 1월 10일 대구청년동맹 간부로서 붙잡히고, 19일 풀려남. 2월 중외일보 대구기자로 임용. 3월 대구경찰서에 붙잡혔다가 풀려남. 10월 《별건곤(別乾坤)》에 이활(李活), 대구이육사(大邱二六四) 이름으로 '대구사회단체개관(大邱社會團體槪觀)' 발표
1월에 ‘대구격문사건’으로 붙잡힘. 3월 석방. 잦은 만주 나들이. 8월 조선일보 대구지국으로 옮김. 만주에 3개월 머물다 연말에 귀국.
3월 조선일보사 퇴사. 4월 혹은 5월 펑티엔으로 감, 7-8월 베이징과 텐진에 머뭄. 9월 베이징에서 난징으로 이동하고, 10월 20일에 난징 근교 탕산에서 문을 연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1기생 학원(學員)으로 입교하여 군사간부 교육을 받음.
4월 20일 1기생으로 졸업(26명), 졸업식에 연극 공연. 4월에 국내에서 《대중(大衆)》 창간임시호에 평문 '자연과학(自然科學)과 유물변증법(唯物辨證法)' 게재.(미리 투고한 원고), 같은 책에 「게재되지 못한 글 목록」에 ‘李戮史’ 이름의 <레닌주의철학의 임무>가 등장. 5월에 상하이로 이동, 6월 상하이에서 루쉰(魯迅) 만남. 7월에 서울로 잠입.
3월 20일 군사간부학교 출신 드러나 경기도경찰부에 구속됨(동기생이자 처남인 안병철이 자수한 후 졸업생 연이어 검거됨). 6월 기소유예 의견으로 석방(8월 기소유예 확정), 시사평론 다시 집필 시작.
「春愁三題」 - 신조선 6
「黃昏」 - 신조선 12
정인보 댁에서 신석초 만나 친교, 다산 정약용 서세 99주기 기념 《다산문집(茶山文集)》 간행에 참여, 신조선사(新朝鮮社)의 《신조선(新朝鮮)》 편집에 참여, 본격적으로 시(詩) 발표.
「失題」 - 신조선 1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 - 風林 12
7월 동해송도원(포항 소재)에서 휴양, 8월 경주 남산 옥룡암에서 휴양.
서울 명륜동에서 거주, 평문의 성격 바뀜(시사에서 문학으로).
가을 신석초ㆍ최용ㆍ이명룡 등과 경주 여행, 가을에 신석초와 부여 관람, 12월 부친 회갑연.
「年譜」 - 詩學 3
「南漢山城」 - 批判 3
「湖水」 - 詩學 6
「靑葡萄」 - 文章 8
시 《청포도》 8월 발표.
「絶頂」 - 文章 1
「班描」 - 人文評論 3
「狂人의 太陽」 - 조선일보 4.27
「日蝕」 - 文章 5
「喬木」 - 人文評論 9
「西風」 - 三千里 10
시 《절정》, 《광인의 태양》 등 발표.
2월 딸 옥비(沃非) 태어남. 4월 부친상(서울 종암동 62번지), 가을에 폐질환으로 성모병원 입원.
2월 성모병원 퇴원, 경주 기계 이영우 집에 머뭄. 7월 신인사지(神印寺址, 옥룡암玉龍庵)에서 요양, 서울 수유리 거주.
「광야」 창작 중.
1월 신정에 석초에게 베이징행 밝힘, 한글 사용 규제 받자 한시(漢詩)만 발표. 4월에 베이징으로 감, 충칭과 옌안행 및 국내 무기 반입 계획 세움. 항일 활동 중 체포되어 베이징 수감.
1월 16일, 베이징 일본총영사관 감옥에서 순국.
「광야」
「꽃」 - 자유신문 (12.17)
동생 원조가 《육사시집(陸史詩集)》을 출판함.
「소년에게」
「邂逅」
「나의 뮤즈」
「바다의 마음」
「편복」